[리뷰] ‘가나다~’가 노래가 되는 순간…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들려주는 인생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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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공연 사진 합본_제공 라이브(주)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
살면서 처음 자신의 이름을 써보는 순간은 어떤 기분일까.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칠곡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진심으로 객석을 천천히 물들인다.
지난해 초연 당시 한국뮤지컬어워즈 작품상·연출상·극본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작품은 재연에서도 여전히 단단했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대와 객석의 가까운 거리였다. 원형 구조의 극장은 배우들의 숨소리와 표정까지 생생하게 전달했고, 작품이 지닌 따뜻한 정서를 더욱 밀도 있게 체감하게 만들었다.
웃음보다 깊은 진심
특히 인상적인 점은 작품이 노년을 다루는 방식이다. 많은 작품들이 노년을 안쓰럽거나 교훈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반면,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할머니들을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그려낸다. 배움에 설레고, 친구와 티격태격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웃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제목처럼 유쾌한 웃음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 작품은 의외로 담담하다. 과장된 코미디나 억지 감동에 기대지 않는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희화화하지 않고 진심으로 살아낸다. 덕분에 웃음은 자연스럽게 터지고 감동은 더욱 깊게 스며든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된 인생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실제 칠곡 할머니들이 쓴 시가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하는 순간들이다. 평생 글자를 모르고 살아온 이들이 어렵게 익힌 한글로 써 내려간 문장들은 그 어떤 문학적 수사보다 강한 울림을 남긴다.
‘가나다’를 배우며 처음 세상을 읽게 된 사람들. 그들의 시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며, 지나온 인생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인데도 객석은 여러 차례 울컥한다. 꾸미지 않은 언어가 가진 힘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을 집필한 김하진 극작가는 "설렘이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공연을 보고 나면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작품은 배움 자체보다 배움을 통해 다시 시작되는 삶의 설렘을 이야기한다.
여섯 명의 배우가 채운 무대
이 작품의 작곡가는 실제 할머니들의 시를 거의 수정하지 않고 음악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가사의 투박한 사투리와 어눌한 표현마저도 하나의 음악이 되고, 결국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돋보인다. 단 여섯 명의 배우가 무대를 이끌어 가지만 공간은 전혀 비어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고, 선생님이 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채워낸다. 화려한 무대 장치 없이도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당신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
공연을 보며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위로'였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일이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인생은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문해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희망은 생각보다 소박한 곳에서 시작된다. 글자 하나를 배우고, 친구와 웃고, 시 한 편을 써 내려가는 일상 속에서 말이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은 유난히 밝았다. 크게 울지도, 크게 웃지도 않았지만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데워진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거대한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조용히 들려준다. 그리고 그 조용한 진심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오는 6월 28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코노미퀸 김홍미 기자 / 사진 라이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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