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칼럼] 딸에게 주는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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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월 대보름 때였다. 동네 단골 반찬가게에서 풍기는 참기름 냄새가 가득한 나물을 보니, 문득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이 해 주신 오곡밥과 나물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나는 잡곡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찹쌀이 적당히 들어간 오곡밥은 달랐다. 엄마는 “김에 싸서 먹으면 더 맛있어.”라며 잘 먹는 나를 보고 좋아하셨다.
시어머님과도 오곡밥에 얽힌 추억이 있다. 어느 날 퇴근하고 파김치가 돼서 집에 왔다. 밥하기 싫은 날. 그날은 그냥 쉬고 싶은 날이었는데, 식탁에 김이 나는 오곡밥과 나물이 놓여있었다. 어머님께서 만드셔서 집에 두고 가신 것이다. 어찌나 반갑고, 감사했던지 그날 저녁이 잊히지 않는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지만, 일하는 며느리를 위해서 손수 만드셔서 가지고 오신 정성에 감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님,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고 전화드렸더니, 맛있게 먹어준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바쁜 네가 오곡밥이나 해 먹겠니?” 어머니들께서 해 준 음식들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사랑이었고, 배려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어머님들은 자식을 위해서 요리를 하실 때가 행복하셨던 때라고 하셨다. 건강이 바쳐주어야만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관절 수술을 하시고는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돌아가실 때까지 누워 계셔야만 했다.
딸에게 요리를 가르치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
결혼한 둘째 딸이 가끔 내게 묻는다. “엄마, 김치찌개 맛있게 하는 법이 뭐야?” 나는 어물어물 답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재료야. 일단 김치가 맛있어야 해.”, “양파나 파를 꼭 넣어야 해.” 단편적으로 이 말 저 말 한다. 다 맞는 말이지만 제대로 된 레시피는 아니다. 제대로 된 레시피를 모른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내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부엌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온종일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엄마는 좋아하는 내색을 비추면서도 꼭 이 말을 추가했다. “나중에 너는 부엌에서 살지 말아라.”, “너는 공부해.”, “이런 건 엄마가 하면 돼.”, “그 시간에 책 봐. 남자처럼 살아.” 엄마가 내게 많이 했던 말들이다. 엄마는 평생 가족을 위해 부엌에 있었고, 딸만큼은 더 넓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당시 엄마들의 마음이 다 비슷한가 보다. 최근에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온 주인공 애순의 대사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 딸은 아궁이 앞에 있지 말고, 상 차리는 사람 되지 말고, 상 엎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소리친다. 엄마의 마음이 읽힌다. 남녀 성별 역할이 고정되고 가사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지금은 요리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세상이 되었다.
최근에 모임에서 만난 K는 요즘 살이 너무 쪄서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고 했다. 이유는 사위가 요리를 잘하기 때문이란다. “맛있게 잘해요. 뭐든지 다 잘 만들어요. 한식, 양식, 일식 못 하는 게 없어요.”라고 흐뭇한 엄마 미소를 띠며 좋아한다. 사위랑 같이 사는데 사위가 요리를 잘하고 좋아해서 음식을 다 만들고 모녀는 먹고 뒷정리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질세라 나도 이참에 사위 자랑을 했다. 둘째 딸 부부는 미국에 살고 있으므로 잘해야 일 년에 한 번 본다. 사위는 치열하고 바쁜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평소에 요리는 생각지도 못한다. 그런데, 얼굴 보기도 힘든 바쁜 사위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을 초청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주메뉴는 스테이크. 딸은 샐러드만 만들었다. 사돈 부부께서도 흐뭇하게 요리하는 아들을 바라본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힘을 주었던 엄마의 음식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도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아쉽게도 응시했던 시험들, 대학입시나 공무원 임용시험에 한 번에 붙지 못했다. 시험에 떨어지던 날, 너무 속상해서 이불을 덮어쓰고 엉엉 울었다. 밥도 안 먹고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불고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다른 말은 안 하셨다. “네가 좋아하는 찌개와 반찬 만들었으니 어서 밥 먹어. 밥 먹고 기운 내.”라고 밥 먹기만 권하셨다. 밥 생각이 없다가도 구수한 된장 냄새를 맡으니 나도 모르게 밥상에 앉았다. 엄마가 내게 해 준 위로와 치유의 방식은 밥이었다. 특별한 음식도 아니었고 화려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니지만,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나면 기운이 났다. 앞이 완전히 무너진 것만은 아닌 것 같았고, 다시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날 공항에서도 엄마는 말했다.
“그동안 고생했구나, 네가 좋아하는 오이소박이하고 깻잎장아찌 해놨다. 주말에 오려무나.”
결혼한 딸을 위해서 반찬을 준비했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 민족에게 밥 한 끼는 너무 중요하다. 오랜 시간 전쟁과 가난을 겪어 온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많은 세대가 배고픔을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음식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굶은 경험이 있는 민족이라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먹을 것이 풍부한 지금도 밥 한 끼가 갖는 사회적 기능은 여전하다. 한 끼를 같이 하며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과의 거리도 좁아지고 관계가 유지된다. 밥 한 끼가 주는 의미는 점점 커지는데, 딸들에게 제대로 된 레시피 하나 물려주지 못하는 내가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나를 합리화시켜본다. 인터넷에 가면 유튜브를 보면 레시피는 넘쳐난다. 필요하면 그것을 보면 된다.
아쉬운 것은 음식과 관련된 엄마와의 추억을 물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음식과 관련된 추억도, 레시피도 없지만, 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있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고, 열심히 해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밥을 먹고 힘을 내어 다음 날을 살아가야 한다. 너무 힘든 날에는 잠시 쉬고 따뜻한 밥을 먹거라. 그러나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에게 음식을 나누고 베풀어라. 어쩌면 이것은 내가 엄마의 음식을 통해 배운 삶의 교훈일 것이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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